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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버스 50년사
Busse News

대우버스 50년사

24. Ma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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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버스 50년사

24. Ma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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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버스 50년사

기획 : 버스라이프
자료 및 사진 : (주) 대우버스
편집 : 버스라이프
등록일 : 2004년 03월 24일

한국 버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곳엔 대우버스가 존재한다.

1950년대 어려웠던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버스산업은 시작되는데...

맨땅에 헤딩하여 고급버스를 만들기까지, 한국 버스 50년, 대우버스 50년사을 되짚어 본다.

1950년대, 전쟁후 폐차로 있던 군수용품인 트럭, 짚차, 쓰리쿼터와 미군으로부터 불하 받은 차량을 전국에 흩어져 있던 운수업자나 정비업자들이 망치로 드럼통을 두드려 펴고, 판금작업을 해서 버스나 트럭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재생자동차산업이 번창하였다.

당시 부산에서 김창원, 김재원씨가 UNKRA계획에 의하여 1955년 2월 신진공업을 부산에 설립하였으며 국내 최초 미니버스 모델인 H-SJ(25인승)을 2천여대나 만들어 호황을 누렸다.

이 합승 버스가 서울에서 운행할 때는 노란색 페인트칠을 해서 운행했다고 하여 당시 사람들은 "노랑차"라고 불렀다. 여기서부터 대우버스 전신의 역사는 시작된다.

1957년에는 UNKRA자금 20만불의 지원으로 정비공장을 착공하고 그 해 3월에 신진공업사와 신진공업(주)를 설립하였다.

1960년도에는 현재 부산시 진구에 위치한 신진공업 부산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62년에 부평에 최초의 대규모 자동차 조립공장(생산능력 6천대/년)인 “새나라자동차(주)을 닛산과 기술 제휴로 설립하였다. 그 해 11월 대중형  자동차 조립공장 인가를 받았으며 제작된 마이크로버스의 차체는 덕수궁전시회에 출품하여 상공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당시 신진버스(부산)공장은 150명의 종업원으로서 3/4t 마이크로버스와 8t 대형버스(목재보디)를 생산하였다.

1963년부터 미군으로부터 불하 받은 엔진, 미션, 액슬을 장착하고 자체기술로 만든 차체로 FB100LK를 10여년간 2,128대를 생산하였다.

                     

1964년도에 소형승용차 제조공장 허가를 취득하고 이듬해인 1965년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여 신진자동차공업(주)로 개명하였으며 이어서 토요타와 기술 및 부품도입 계약을 맺고 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을 인수하였으며 국내  대형버스 최초 모델인 B-FB-20을 생산하였다. 1967년도에 종합 자동차 제조공장으로 허가를 받고 이때부터 서서히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다.

종합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 신진자동차에서 국영한국기계공업을 인수하는 등 몸집을 불려갈 즈음에 부산공장에서는 DB102L이라는 9m급 버스가 출현하여 약 4년간 4,049대를 생산하였다

1972년 그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메이커인 GM과 각각 2,400만 달러를 투자하여 GM코리아FMF 설립하였다. 이 때부터 신입사원을 공개적으로 채용하였으며 이 시절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대우버스의 역사와 함께하는 직원도 있으며 그 시절의 화려한 자동차 공업의 선도적인 역할을 되새겨 자랑을 하기도 한다. 이 시절에 다양한 버스가 개발되었으며 그 모델들은 토요타 엔진을 장착한 DHB400C, DAB등 9m급이었으나, 그 중에 DB105이라는 10m급도 개발되었다

1973년도에 GMK에서 개발한 대형승합차인 시보레 버스(BD모델)를 발표하였으며 이어서 시보레 라이트버스(중형승합)를 생산 개시하였다.

1975년도에 대우중공업(주)와 한국기계공업에서 디젤엔진공장이 준공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모노코크 타입의 리어엔진버스(엔진을 차량의 뒤쪽에 장착)를 개발하였다.

그즈음에 독일 MAN사 엔진이 전량 국내모델로 교체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 당시 개발된 BD101은 대우버스의 역사상 길이 남을 BF101의 전신 모델이 된다

1976년도는 분주한 해였다, 독일 MAN 엔진을 리어엔진버스에 장착하였으며, 대우에서 한국기계(주)를 인수하여 디젤 엔진을 본격적으로 개발하였다.

또한 BD모델 버스를 4,000대 생산 돌파하였으며, BF101 전신 모델인 BD101 리어 엔진버스가 국내 최초로 완성차버스로 국내 시판이전에 이집트로 20대 수출하게 되었다. 또한 회사는 상업은행과 GM이 지분을 각각 50%씩 출자하여 새한자동차로 출범하게 되었다.

년말에는 BD101 리어엔진 버스를 도시형버스로 국내 시판을 실시하였다.

1977년도 새한 리어엔진버스의 국산화율을 90% 돌파하였으며, 현재 부산공장과 동래공장의 형태로 운영하게 되었다. 그 해 7월에는 사연 많은 대우그룹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대우그룹 편입후 1978년도에 BD모델 생산을 7000대 돌파하였으며 동년 7월에 김우중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또한 BF101 차종으로 시내 직행버스 발대식을 부산에서 가졌다.

이듬해인 1979년에는 제2차 석유파동이 시작되어 기준유가가 59%나 인상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피격으로 급작스럽게 치르는 사후 처리과정에서 대통령의 유해를 운구할 영구차를 긴급히 제작하였다. 당시 대형 통유리와 특수시트 장착 및 차체를 100mm 낮추는 특수 사양으로 주문되어 차량 제작시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차를 운전하신 기사의 후기담에 의하면 너무 긴장하여 화장실 가고 싶어 혼났을 정도로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한 관심사였다.

1981년도에는 6대 최명걸사장이 취임하였으며(1-김창원, 2-김종달, 3-김우중, 5-이석희) 1982년에는 고급 차종인 BV113 리어엔진 버스를 개발하였다.

1983년 새한자동차(주)에서 대우자동차(주)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본격적인 고속버스 개발이 시작되었다. MAN사의 D2848(310ps)을 장착한 BH120S는 국내 최초로 아연도금 강판을 적용하였으며 생산 1호차는 대우로얄즈 축구단에서 사용되었는데 국내 최초로 회의실, 냉장고, 비디오가 장착된 특수 차량이었다.

년말에는 BV113을 양산하기 시작하였다. 1985년도에는 개발이후 밤낮없이 생산하여 아직도 하루 생산24대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BF101이 최초 생산한지 10년만에 3만대를 생산하였으며 단일 차종으로 국내 시장을 50% 점유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대우버스의 짧은 전성기를 마감하는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 해 3월 GM과 월드카 프로젝트에 합의하고 소형차 생산라인을 증설할 즈음에 노조와의 마찰로 끝없는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승용차는 어느 정도 신개발을 착수하였으나 대형버스는 어느덧 좋은 시절을 꿈꾸며 어려운 살림살이에 투자의 여력을 점점 잃어갔다.

그 가운데서도 1986년에 BS105 도시형버스와 BH115H 고급관광버스를 개발하여 버스 차종의 기본 라인업을 이루어 갔다. (도시형 : BF101, BS105/시외직행 : BV113/시외고속 : BH115H/고속관광 : BH120H)

이 후 1991년도에 BH120H를 현재 고속버스 형과 같은 BH120F 모델로 FACE LIFT 하여 1992년 초반부터 양산하기 시작하였으며 1995년도에 BH117H, 1997년에 BH116을 개발하여 틈새시장으로 파고 들었다.

특히 1996년에 개발된 BM090는 투자 여력을 상실한 가운데 도시형버스의 길이를 축소하여 경쟁사의 중형에 대응한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시내버스의 고객이 줄어들고 운영비용을 절감하려는 경영주의 판단과 일치하여 오늘날  이렇게 주력 차종으로 변신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1995년에는 현재 중국 계림공장과 합작으로 생산 개시하였으며 1998년에는 관광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경제적인 BH115E를 개발하였으며 서울 대중교통 전시회를 겨냥하여 BS120CN 초저상버스를 개발하여 국내 최초로 상업용 출시와 더불어 저상버스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또한 CNG를 사용하는 저공해버스를 개발하여 서울 대중교통 전시회에 출품하였고 이어 LPG 연료 버스를 개발하여 시범 운행중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는 개발로 인하여 현재 버스분야에서 선두주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룹사의 구조조정에 이어 1999년 워크아웃 결정되어 년말에 김우중회장이 대우그룹에서 고별하였으며 이듬해 2000년 11월 최종부도사태와 포드사의 인수제안서 포기 및 2001년도 대폭적인 인력 감축안으로 장기간 부평공장이 생산중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가운데 버스공장은 저공해 CNG버스를 양산하였으며 BF105차량의 외관향상을 위하여 개발한 BF106은 수출 주력차종으로 부상해 있으며 아울러 초저상버스를 아태장애자대회를 위하여 양산하기도 하였다.

2001년 5월 저돌적인 GM사의 인수방침이 확정되자 회사정리계획안에 GM의 상용부문 인수제외 방침에 따라 버스공장은 독자회생은 모색하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버스공장 직원들의 노력과 이어지는 수출물량에 의하여 공장의 정상화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었고 경영에 대한 밝은 미래를 보임으로서 사업다각화에 초점을 맞추어 최초 인수의향을 제시한 영안과 조우하게 되었다.

지나온 50년의 시간들이 오랜 기술적인 축적에 따른 장점이자 또한 자신만의 아집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다가올 50년에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기업문화와 앞선 기술력과 제품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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